바람의 화원, 그리고 닷냥 커플

최근 바람의 화원을 봤습니다.

전 드라마는 되도록 완결이 되면 보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아예 못보고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람의 화원은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인물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SBS 연말 수상식에서 국내 최초로 여자-여자 커플이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하면서부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근영양 이 사진에선 참 여성스러운...

도대체 그 '닷냥 커플'이 뭐길래 이렇게 이슈가 되고, 후보에도 없던 커플을 후보로 올리고,
결국은 상까지 수상하게 되어 두 배우가 당황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거죠.

바람의 화원 전후로도 '남장 여자' 라는 소재를 가지고 만들어진 드라마들은 모두 꽤 주목을 받았었죠.
윤은혜가 스타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커피 프린스 1호점 이나 최근 박신혜의 독특한 말투와 귀겨움으로 매력을 보여주었던 미남이시네요 같은 드라마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세 남장 여자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 좀 더 얘기하기로 하구요...

바람의 화원은 남장 여자 소재 중에서도 특별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남장 여자 (문근영)' 와 '여자 (문채원)' 의 로멘스죠.

보통 남장 여자가 등장하면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동성애' 입니다.
실제로 동성애는 아니죠. 남장 여자니까요.
하지만, 둔감한 주인공(은 물론이고 모든 조연들)은 웬만해서는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현실에서 그 정도 미모로 남장을 하고 있을 경우 모를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 둔감함 덕분에 남자 주인공들은 스스로 성 정체성의 혼동을 느끼게 되고,
이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긴장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에게 그 긴장감은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스타일로 다가옵니다. 마치 몰래 카메라를 보고 있는듯한 기분이랄까요?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문근영)과 정향(문채원)의 관계는 이것보다 훨씬 미묘합니다.

정향이 윤복을 좋아하는 감정은 순수한 여인의 감정입니다. 상대를 남자로 생각하니까요.
그렇다면 윤복의 마음은?
여기서부터 시청자들은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여자인데, 여자에게 미묘한 눈빛을 던지고, 작업을 걸고, 스킨십을 하고...

허거걱-_-;


외모로 봤을 때는 가장 남장 여인 같지 않았던 문근영이지만, SBS 연기 대상을 받은게 아깝지 않을 정도의 포스로 남자 연기를 해주면서 시청자가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실제로 '닷냥 커플'에 대해 검색해보면, 많은 시청자들이 후덜덜한 긴장감과 자극(?)을 느끼고 뒤집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똘망 똘망하게 나왔지만 실제 드라마에서는 그야말로 후덜덜...;;;

만약, 그냥 다른 동성애 영화처럼 노골적으로 동성애 코드로 밀고 나갔으면 오히려 거부감이 생겼을텐데, 항상 정도와 선을 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여장 남자 - 여자와의 사랑이 아니라 예인(음악인-미술인) 간의 공감대에서 나오는 그런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의 사랑을 동성애라는 것으로만 묶을 수는 없게 됩니다.

또한, 다른 남장 여자들에 비해 무게감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번 거짓말을 했더니 계속해서 속일 수 밖에 없었다' 라는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수술한 오빠 대신 잠깐 동안만 오빠 행세를 해준다는 미남이시네요와는 달리,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남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라는 납득 가능한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윤복의 정향에 대한 작업(...)이 시청자가 느끼기에 어색함이 없을 뿐 아니라, 안타까움과 설레임과 두려움과 어색함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만듭니다.

감독(그리고 작가)이 박신양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윤복과 정향의 관계를 너무 아름답고 애틋하고 긴장감 넘치게 표현하다보니까, 정작 남자 - 남장 여자로 긴장감과 로맨스를 보여줬어야 할 박신양은 드라마에서 짜게 식어버렸습니다.-_-;
그래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배우인 박신양이 주로 개그를 담당하고 있으니 이게 웬일입니까 -_-;

이..이런게 아닌데...

물론, 박신양은 엄청난 출연료를 얻었고 (법정 분쟁에서도 결국 승리), 문근영은 연기를 인정 받았고, 문채원은 신인 답지 않은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그 후 찬란한 유산, 아가씨를 부탁해 등에 연달아 출연) 모두가 윈윈이긴 하죠.

그래도, 박신양이 회고할 때 '바람의 화원에서 문근영-문채원 커플에게 밀렸었지. 이런 개쪽이...' 하고 생각하기 충분한 상황인 듯 합니다.-_-;

사실 연기에서도 문근영에게 크게 밀린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SBS 에서 무슨 생각으로 문근영에게 '대상'까지 준걸까... 그냥 이슈를 만들려고 그랬던건가? 생각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니 받을 자격이 충분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상 받고 펑펑 울면서 그녀가 겸손해게 소감을 얘기했던 것이 기억이 남과 동시에, MBC에서는 김명민과 '송승헌'이 동시에 대상을 수상한 것도 기억이 나는군요. 그 수상은 송승헌에게도 아주 끔찍한 추억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_-;

내가 웃어도 웃는게 아니야...

바람의 화원은 그러니까 '닷냥 커플' 외에도... -_-;
조선 시대의 '그림'을 다루고 있습니다.

드라마 이산도 성송연(한지민)이 도화서 다모로 출연해서, 그림에 대해 아주 '살짝' 다루고 있지만, 바람의 화원은 본격적으로 그림에 대해 다루며, 김홍도와 신윤복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죠. 그런 면에서는 꽤 의미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 대해서는 교과서에서 잠깐 본 정도가 전부였는데, 바람의 화원을 보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신윤복이 여자였다라는 원작 소설의 설정이 역사를 농락했다라고 평가하기 보다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일반 시청자들이 조선 시대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더 크게 보고 싶습니다.

이산을 보고 바로 바람의 화원을 보게 되니 약간 의아한 점이 있더군요.

정조가 즉위할 당시, 정순황후의 오빠인 김귀주는 거의 바로 폐서인되서 유배를 가게 되는데...
이산에서는 정조 즉위 전에 그렇게 되는 반면, 바람의 화원에서는 정조가 왕이 된 후에도 계속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조가 즉위할 때 별제(도화서의 책임자)가...
이산에서는 다모 성송연에게 화원이 될 기회를 주고, 정조에게 충성하는 아주 인자한 사람이었던 반면,
바람의 화원에서는 정순황후랑 손을 잡고 정조에게 반역하고, 잘못된 일만 저지르는 그런 사람입니다.
분명히 같은 시기의 도화서 책임자인데...-_-;

그리고, 정조 자체도 좀 다릅니다.
이산의 정조는 다정 다감하고, 결단력이 있을 땐 결단력 있고, 자기 사람들을 믿고,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는 그야말로 외유내강의 영웅이었던 반면,
바람의 화원의 정조는 찌질이 같습니다.-_-;
자기가 일 시켜놓고, 조금만 잘못되면 일 맡긴 사람들에게 책임지라는 스타일이고, 웬만한 일은 용서도 잘 안하고 삐지기도 왜 이렇게 잘 삐지는지... 이산을 보지 않았으면 좀 달랐겠지만, 바람의 화원에 등장한 정조는 정말 매력없음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이죠.
정조가 즉위했을 때 도화서에,
이산에는 성송연이 있는데,
바람의 화원에는 신윤복과 김홍도가 있다는 것-_-;

아악~!

이 부분은 바람의 화원쪽이 맞습니다. 김홍도는 영조 때부터 도화서 화원이었으니, 사실 이산의 도화서에도 김홍도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영조와 정조의 어진화사(임금의 초상화 그리는 것)를 모두 담당했을 정도니까 도화서의 히어로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산에서는 아예 얼굴도 내보이질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보니까 김홍도를 출연시키고, 성송연과 에피소르를 좀 더 만들어줬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드네요.

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고, 또 정조와 도화서가 스토리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바람의 화원 정조역으로 이서진씨가 나오고, 홍국영으로 한상진씨가 나왔으면 훨씬 흥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_^;

바람의 화원 - 정조

이산 - 정조

이산 - 홍국영

바람의 화원 - 홍국영

바람의 화원은 OST 도 상당히 좋습니다.
이산에서는 드라마에 음악이 나왔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곡이 없는데,
바람의 화원은 조성모가 부른 주제곡을 비롯해서 좋은 곡들이 많습니다.
(조성모의 노래는 To Heaven 이후로 오랜만에 마음에 드네요)

특히, 윤복과 정향이 등장할 때 마다 흘러나오는 곡은 더욱 감동이... : )


문근영과 문채원 덕분에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짧기도 짧았고) 볼 수 있었습니다.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 이후로 활동이 활발한데,
문근영은 학업에 열중하고 있나 봅니다. 차기작 얘기가 안나오네요.

허준, 상도, 대장금, 이산을 만들었던 이병훈 PD 가 차기작 동이의 주인공으로 문근영도 후보로 올려놨었는데, 결국 한효주로 결정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 보고, 동이 역으로 문근영이 나오면 정말 최고일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죠.

한효주가 미워서 그러는게 아니고,

이런 여자를 미워할리가...

한복도 잘 어울리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기죠...

대장금 급의 성공작을 만들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문근영을 찾으시는게 좋을텐데...

@ 보통 드라마에서 커플이 분위기가 좋으면 '진짜 사귀어라~ ' 라는 반응이 생기죠.

문근영과 문채원이 사귈 경우...

여자 - 여자 커플일 뿐 아니라, 문채원이 1살 연상이고, 더구나 같은 문씨. 동성동본...-_-;

한국 최고의 금기 커플이 될 수 있습니다. 후~~